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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의 즐거움
□ 히노나카 헤이스케
□ 히노나카 헤이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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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45~51
"왜 배워야 하는가"
사람은 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앞에서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나도 그 답을 잘 모른다. 모르면서 공부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하는 말이 있다. 여기서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중략] 열심히 공부해도 결국 잊어버리게 되는 것을 왜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문제가 나오게 된다.
나는 그러한 질문을 하는 학생들에게 "그것은 지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라고 대답할 것이다. 즉 공부하는 과정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지혜라는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지혜가 만들어지는 한 공부한 것을 잊어버린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는 여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배우는 것은 낭비가 아니다. 그러므로 많이 배우고 많이 잊어버리고, 다시 많이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도대체 지혜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단히 애매하기 때문에 쉽게 분석하기는 힘들지만 인간의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는 확실하다.
[중략] 나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여유'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의 '여유'는 수학적인 의미로서의 '여유'다. 즉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정보는 얼마 되지 않지만 방대한 양의 정보가 '바로 꺼내 쓸 수 없는 형태'로 뇌에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전자에 대한 후자의 비율의 크기를 '여유'라고 부른다.
[중략] 인간의 두뇌는 불연속적인 것을 연속적으로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중략] 실생활에서도 의견을 종합할 때에 서로 다른 의견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은 대단히 유용한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은 폭넓게 생각하게 마련이고 또 그래야만 사고가 발생하고 깊어지게 된다.
앞에서 나는 인생에는 깊이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있고,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공부하는 목적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바꾸어 말하면 '지혜의 깊이'는 공부를 통해서만이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의 두뇌는 인간 특유의 폭넓은 사고의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는 힘, 즉 '지혜의 깊이'가 키워지지 않는다.
지혜에는 '넓이'가 있고. '깊이'가 있고, '힘'이 있다. '지혜의 힘'이란 결단력을 말한다.
우리의 인생에서 부딪히는 문제는 퀴즈나 테스트처럼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문제는 상당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진정한 해결이 불가능할 뿐더러 문제 그 자체의 진의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긴 시간을 들여서 모든 것을 알아내기 전에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겠다는 태도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중략]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 순간에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한 단계 뛰어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비약을 해야 한다. 불연속적인 것은 연속적인 거으로 유도하는 두뇌의 관용성은 비약하는 것을 비약이 아닌 것같이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사람은 비약할 수 있다.
[중략] 결단할 수 있는 힘, 어느 순간에 '얏!'하고 비약할 수 있는 힘, 이러한 지혜의 힘은 인생과는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이는 공부하는 가운데서 키워지는 것이다.
지혜에는 내가 말한 것 이외에도 몇 가지 측면이 더 있을 것이다. 어쨌든 '왜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지혜를 닦기 위해서이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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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떤 생각을 하며 읽었던 것일지 돌아보게 된다. 당시에 아랫층에 살던 고등학생 형에게 책을 받은 뒤 읽고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래저래 살다가 2014년 7월에 자대배치를 받은 후에 우연히 메이지대 괴짜 교수 사이토 다카시의 저서들을 접했고 그가 '독서(학문)'를 나이테가 생기는 일에 비유한 것에 무언가 데자뷰를 경험했다. 데자뷰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군생활을 하다가 첫휴가에 나와서 골방에 넣어던 책들을 뒤적이며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학문의 즐거움'을 다시 찾게 되었다. 그때 다시 읽지는 않았다. 그저 해당 부분만 확인하고 궁금증이 풀렸기에 골방에서 책을 꺼내 책장에 다시 꽂아놓기만 하고 대면을 마쳤다.
책을 다시 대면했던 것은 2016년 2학기 무렵이었다,
공부를 하다보니 책에 있는 (임상)사례들이 불일치하는 경우도 있고 동일한 문제에 대해서도 인지행동주의, 인본주의, 생물학적 접근에 따라 서로 다른 견해를 내놓는 것을 보고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회의했다.
시험을 보는 과정에서도 형식은 서술형으로 확정되어있고 서술형의 형식적 특성상 채점은 주요 키워드와 논리적 정합성만이 중요하기 때문에 공부하고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는 것이라고는 평균적으로 전공서적 200페이지(자료별도)*6과목=1200페이지(1380페이지)를 외우는 것 뿐이었다.
아마 외운 것이 언어적으로 떠올랐다면 회의를 안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외운 것은 이미지의 형태로 떠올랐다. 그렇게 외운 것이 6개월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아서 더 회의를 했었다.
그리고 어떤 말을 하더라도,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그 말과 질문의 기원이 스스로가 아니라 내가 읽었던 책, 방송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에 좌절했었다.(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다. 사고라는 것은 지각, 감각, 인식 작용 즉, 외부 경험과는 별도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리고 인간의 생활양식은 인간 문명사가 거의 변하지 않았으니 수천년간 사유의 방식이 다양했을 거고... 오히려 타인과 동일한 사유를 한다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도 했을 테고)
그때 이책을 다시금 꺼내어 읽었다.
책의 첫장부터가 '창조하려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 학자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지식을 얻은 것은 아니고 한 인생을 바라보며 삶에 대한 태도를 다시금 다잡게 되었다. 저자가 이를 의도했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저 개인의 경험이다.
p.s
학부 수준에 불과하지만 4년간 공부해온 것이 있어서 대학자의 사유를 심리학의 내용으로 대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게 즐겁다.
#학문의즐거움
#히노나카헤이스케
#김영사
#왜배워야하는가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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